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과 서커스 (문단 편집) === 진실 === '''라제스와르 준위를 살해한 것은 야쓰다였다.''' 그는 사실 라제스와르 준위와 한패로, 도쿄 로지를 거점으로 하여 네팔에서 일본으로 [[마약]]을 밀입국하는 것을 벌이로 삼고 있었다. 유통 방식은 작은 불상 속에 대마초를 집어넣고 도쿄 로지에 머문 일본인 관광객을 통해 일본으로 보내는 것. 이러한 과정은 지금까지는 잘 이어져 왔으나 [[네팔 왕실 참극]]으로 인해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을 예상한 라제스와르가 혼란 속에서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이 일에서 손을 떼려 했고, 반대로 야쓰다는 대마초 유통이 원활히 되지 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둘의 사이에는 조금씩 마찰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야쓰다는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반복하며 얻은 모든 객실의 복제키를 이용해 로버트 폭스웰의 객실에 잠입해 총을 훔친 것이다. 다치아라이와 라제스와르 준위가 만난 폐건물도 사실은 야쓰다와 준위의 밀회 장소였던 것. 작품 마지막에 드러난 또다른 반전은, 준위를 살해한 사람은 야쓰다지만 시체를 공터로 옮기고 상체에 INFORMER라고 새긴 것은 사가르였다는 것이다. 모두 '''다치아라이의 기자생활을 끝나게 하기 위해서'''[* 다만 기자생활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서였는지, 또는 단순히 골탕을 먹일 생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작중에서 다치아라이도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한다.][* 작중에서 사가르는 당사자의 입장, 즉 절박한만큼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처한 인물이기에 관찰자인 기자의 입장에 있는 다치아라이나 독자에 비해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예를 들어 사가르네 형의 죽음같은 경우도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최대의 책임은 '네팔의 열악한 아동인권 및 가혹한 아동 노동 환경' 과 '아동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돈을 쓰느니 아이들을 해고하고 사업장을 닫아버리는 것을 선택한 악덕 사업주들' 에게 있고, 기자들의 책임은 '자신이 쓴 기사가 어떤 반향을 일으킬 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 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함을 감안하더라도 부차적인 영역에 속해있지만... 네팔의 빈민가라는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한 '당사자'인 사가르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 정부나 자국의 악덕 사업주들의 행태는 '이미 익숙해져서 당연하게 인식되는 것' 이기에 오히려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가르의 분노는 본래 형이 가지고 있던 '좋은 일자리'(=국제 기준으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공분을 살 정도로 가혹한 아동노동)을 중단시킨(=일자리를 없어지게 만든) 외국 기자들에게 향하게 되는 것. 사실 작중에서 중후반부까지만 해도 사가르와 다치아라이는 사이좋고 친근한 관계였는데 결말에서 드러나는 사가르의 음모를 보면 상대(다치아라이)를 의도적으로 속이고 함정에 빠트려 기자로서의 사회적 생명을 끊어놓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거의 범죄의 영역에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악의적인 행동이었던 것. 따라서 사가르를 나쁘게 보자면 '타인을 해치기 위해 자신의 속마음까지 완전히 속이고 접근하는 음흉하고 악독한 인간'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치아라이가 의심한 것처럼 아직 어린아이에,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사가르로서는 자신의 음모가 성공했을 때 다치아라이가 어떤 타격을 받게 되는지 명확히 알지 못했기에 작정하고 다치아라이를 해치려고 꾸민 음모가 아니라 그냥 골탕이나 한 번 먹이는 정도로 생각하고 한 행동일수도 있다는 것. 작 중 다치아라이도 사가르가 카메라맨과 기자를 구별하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며 이런 생각을 한다.] 사가르는 예전부터 [[기레기|사실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에게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 참혹한 사실을 널리 알린다는 이유로 기자들이 찍어간 사진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레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았고, 사가르의 형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자들이 찍어간 사진 덕분에 네팔의 가혹한 아동노동 환경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큰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아동착취사업장에도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지나치게 어린 아이들에게 가혹한 노동을 시키지 말라는 압력이 가해진 것이다. 그러자 아동착취사업주들이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그냥 아이들을 해고해버리고 사업장 문을 닫은 것. 사가르의 형 역시 이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더 열악하고 위험한 다른 일을 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즉 이 부분은 통상적인 [[기레기]]질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네팔의 가혹한 아동노동실태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쓴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문제는 기사의 내용이 기자의 본래 의도와는 정 반대의 부작용을 가져왔다는 것이므로 이 부분의 주제는 '기자 자신은 스스로의 본분에 따라 직업적 책임을 다한 것 뿐이지만, 그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가 발생했다면 기자는 그에 대해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 작품의 결말을 보아도 이 점은 명백한데, 이 갈등을 단순히 기레기질의 문제로 해석한다면 사가르에게 '보는것도 쓰는것도 그만둘 수 없다' 는 다치아라이의 대답은 "네가 뭐라고 하든 나는 기레기질 계속할거다! 크하하하!!" 하는 썅년포스 넘치는 대답으로 해석되어 버린다. 당연히 상식적인 독자라면 다치아라이가 내놓은 대답을 '기자로서 자신이 본 것을 널리 알리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다만 그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도록 최대한 조심할 수 있을 뿐이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것이다.]. 그래서 사가르는 라제스와르의 죽음을 왜곡한 후 다치아라이가 접하게 해 사실과는 다른 기사를 쓰도록 유인한 것이다. 물론 다치아라이는 진실을 알아차렸기에 기사를 쓰지 않았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